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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제1탄 ..역사  소용돌이 속에서의 '용산'

  • 용산여성인력개발센터
  • 2022.06.20
  • 조회 964

[슬픈 역사가 깃든 땅!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용산!!]

용산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는 '용산인' 기획시리즈로 용산을 테마로
다양한 각도로
글을 올릴려고 합니다.
이는 용산 소재 기관으로 그 정체성에 대해 더욱 고심해 보고자 하는 취지이므로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그 첫 시리즈로 '역사 소용돌이 속에서의 용산' 이란 주제로
지금의 용산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용산의 명칭은 한양도성 서쪽 무악산(서대문구 안산) 남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가 한강변을 향해
구불구불 나아간 모양이 마치 용의 몸통과 비슷하다는 데서 따왔다.
지금은 미군기지와 삼각지, 이태원 등 남산과 한강 사이 지역만 용산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조선시대
‘둔지산’이 있던 자리다.
옛 한양도성 속 용산은 효창공원과 원효로 서쪽 일대의 구릉지를 일컬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용산은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용산역이 만들어지고,
신용산으로 명칭하며 오늘 날의 용산 지역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용산은 평지가 많고 한강 물길이 닿는 교통의 요지였다.
이 때문에 용산은 조선시대 국가 군수창고 기능을 수행했던 군자감 등이 자리한 전략적 요충지로 기능해왔다.
예로부터 외국 군대가 이곳을 탐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용산에 외국 군대가 주둔한 역사는 약 75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기였던 13세기 말, 원나라 침공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군대가 이곳에 진을 쳤다.
구한말 임오군란 때는 청나라 군대가, 일본군이 주둔하면서는 을미사변을 도모했고
대륙 침략 전초기지로 삼은 곳 또한 바로 이곳이다.

청일전쟁(1894~1895) 이후에는 일본군이 본격적인 군사 기지로 활용하게 되었고,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은 용산 일대를 군용지로 강제수용해
조선 주둔 일본군사령부와 조선총독부 관저 등을 지었다.
이듬해 전쟁은 일제의 승리로 끝났고, 1907년 사격장을 시작으로
1908년부터 병원·창고·형무소 등이 들어섰다.

이후, 일제는 1914년 용산 일본군 기지를 조선군사령부로 이름을 바꿨고,
20사단 외 추가로 1개 사단을 더 주둔시키기도 했다.
일제시대 용산에는 총독 관저를 비롯해 사단 사령부, 사단장 관저 등
일제 무력통치의 핵심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30년대 들어서는 중국 침략과 전시물자 동원을 위한 기지로 그 역할이 더욱 확대됐다.
일제식민지 시대의 용산은 일본이 한국을 통치하기 위한 전초적인 장소로
경제, 교통,유통,군사,문화 등 종합적인 중심지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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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으로 패망한 일본이 물러가면서, 미국이 들어오게 되었다.
한국전쟁 후, 본격적으로 미군기지가 용산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용산은 긴 시간동안 아픈 역사와 함께 또 다른 외세세력의 근거지가 되었다.

용산은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 외세세력의 침투와 더불어 외국문화가 들어오게 되었고,
후암동,청파동을 중심으로는 일본문화가, 이태원,삼각지역,해방촌,한남동 등엔 미국문화를 토대로 한
서구 문화가 공존하며 용산 특유의 글로벌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일본 패망 후 용산은 미군의 주둔으로 여전한 군사기지,냉전의 전초기지로 자리 매김되었으며,
미군기지 주변의 해방촌과 기지촌은 미국문화가 한국으로 전파되는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국전쟁 후, 본격적으로 미군이 주둔하면서 클럽문화와 식문화를 비롯,
음악,미술 등 여러 분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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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표 지역'

'용산'하면 떠올려지는 대표 지역으로는 한남동,이촌동,해방촌, 이태원,삼각지,보광동,후암동,청파동 등이 있다.
특히 후암동과 청파동엔 일제식민지의 잔재 흔적이 아직 남아 있고,그 예로 다양한 적산가옥이 눈에 띈다.
최근엔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해서 복고풍 느낌을 살린 레스토랑,카폐, 쁘띡호텔등으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이태원,해방촌,삼각지역 주변은 미군의 영향력을 많이 받은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삼각지역 주변의 화랑거리를 비롯하여 기지촌과 해방촌,이태원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에서 몰려든
서민들과 미군을 상대로 생계를 유지했던 여러 형태의 주민들이 정착했던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반면, 한남동은 많은 외국 대사관들이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대사관 직원과 외국계열 회사들 직원들이
정착하게 된 지역으로 또 다른 분위기의 글로벌 용산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해방촌,보광동은 해방 후 외국에서 귀국 한 내국인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이루게 되었고,
한국 전쟁 후에는 탈북민들과 지망에서 상경 한 내국민들에 미국 주둔으로 인한 관련 업계 종사자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해방촌'이 자리잡기 시작 했다.
그 터전이 확장되면서 이태원과 더불어 '이주민과 외국인의 주민화'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용산; 진정한 글로벌화 지역'용산'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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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사박물관 '


2022년 3월23일 용산철도병원,경성철도병원,서울교통병원,국립서울병원,중대부속용산병원이
용산역사박물관으로 재탄생하여게 되었다.

용산역사박물관에서는 용산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과 기록들을 재조명하면서,
'용산'이란 지역적 특성 과 더불어 한국의 근현대사와 용산을 더듬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용산은 서울의 지리적으로 서울의 중심이라는 지역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 외세세력의 근거지로 이용되면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재평가되고 있으며, 그 아픈 역사의 흔적마저도 재 해석되어지고 있다.

말하자면, 그런 용산에서 파생 된 여러 문화가 융화를 이루며 공생해 가는 과정 속에서
트렌디 한 레트로풍이 자연스럽게 무더져 나오는 독특한 색깔을 띄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용산! 그 용산이 향후 글로벌시대의 국제화 중심지로
탈바꿈할 수 있는 저력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며,

이주민에서 원주민으로 '경계를 풀고 공존의 시대로 나가는 용산'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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